-
-
언론을 통해 '불수능'이라는 단어를 접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예년과 달리 어려워 불수능이라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지 30년이 넘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어려웠다는 문제를 찾아봤다. 단지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이러는지?'라는 궁금증이 앞섰다. 뚫어져라 봤다. 모르겠다. 천천히 30분 이상 보았다. 그 시간 동안 딴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게 종교의 수행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혼자 웃음 짓게 됐다. 다시 문제를 봤다. 보기 다섯 개 가운데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이중 하나가 답인 것 같다. 하지만 모르겠다.
2018.12.05 07:28
-
필자는 가끔씩 교육연수원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생들의 문제 행동과 대처방법, 상담과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강의를 한다. 강의가 끝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다. 자신의 반에도 그런 학생이 있고 치료를 받으면 좋아진다는 것도 알겠는데, 그것을 학부모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학부모에게 그런 말을 하면 열에 일곱, 여덟은 오히려 본인에게 화를 낸다는 것이다. 멀쩡한 내 아이를 왜 문제아처럼 여기냐고 말이다.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집에 가서 선생님에 대한 분노와 험담을 부모에게 늘어놓은 학생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2018.11.21 07:57
-
수행자의 삶은 이른 새벽에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한 몸 의지할 조그마한 방석을 펴 앉는다. 그리고 새벽의 기운을 더하고 나의 참된 삶을 위해 깊은 수행에 잠긴다. 하지만 여름과 달리 초겨울에 접어들면 아침 기온이 차다는 감각을 피할 수 없다. 스스로 놓지 않으려는 습관을 지우듯 지난 여름의 익숙함을 깨는 초겨울 추위는 매섭다. 추위를 피하고자 방석에 더해 무릎 덮개를 살며시 덮어보기도 한다. 추위라는 새로운 적응을 위해 내가 변하고 있음을 이른 새벽에 느끼게 된다. 그 느낌이 나도 모르는 사이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느낌
2018.11.07 08:29
-
한 여학생이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증상은 우울, 불안, 초조, 자신감 부족 그리고 자살을 하고 싶은 생각 등이었다. 환자는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친구들에게 피해만 주는 사람이고, 선생님에게는 부끄러움만 주는 학생이라고 했다. 엄마와 아빠에게는 짐만 되는 딸이라고 했다. 환자는 면담시간 내내 눈물을 흘렸고 자신이 죽는 것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또 자기 자신을 위해서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한 이후 술에 빠져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마트에서 일을 하고 가사 일까지 하면서
2018.10.24 06:35
-
이제 아침 공기가 쌀쌀하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일지라도 여전히 사람들의 움직임은 끝이 없다.생각해 보니 지난여름은 무척 더웠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흘렀다. 그 덕분에 내가 배운 것은 에어컨이 있는 세상과 에어컨이 없는 세상으로 구분하는 일이었다. 몸으로 직접 다가서는 일은 체험이라는 경계를 넘어 어느덧 분별이 돼버렸던 것이다. 더위는 싫었다. 그만큼 에어컨은 좋았다.어느덧 쌀쌀한 가을을 맞이하며 지난여름을 돌이켜 보니 시간의 흐름 속에 부끄러움을 접을 수 없었다. 더불어 계절의 변화도 새삼 나의 일상 앞에 놓인 인연이라는 생각
2018.10.10 08:47
-
지난 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끝났다. 하지만 하나된 응원으로 승리를 외치던 우리 안에 작은 갈등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바로 병역이다. 승리를 위한 선수들의 땀과 노력은 한 게임 한 게임 이기기를 바라는 그 순간에 충실했다. 물론 그 충실함은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힘으로 드러났다. 저마다의 기대는 기쁨과 아쉬움으로 갈라지듯 말레이지아 축구대표팀에게 2대 1로 졌을 때에는 아쉬움과 함께 모두가 원했던 승리를 채우지 못했다. 그 이유만으로 수많은 질타 또한 이어졌다. 그리고 6대 0이라는 승리에 취해 자만했다는
2018.09.12 08:29
-
우리나라 장애우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등록장애우의 수는 2008년 224만 7000명에서 2017년 254만 6000명으로 증가했고 전체 인구 중에서 등록 장애우의 비율은 현재 4.9%에 달하고 있다. 우리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 이 장애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또 우리 사회는 장애우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정책을 가지고 어떻게 접근하고 있을까.우리나라의 장애우 정책은 아직도 장애우를 관리 하고 시혜를 베푸는 것에 머무르고 있다. 예산이 증가하면 우선 그 관리를 위한 공무원의 수를 늘리는
2018.08.29 08:20
-
어느 날 아침이다. 수행처이자 거주공간인 심인당을 찾은 한 어머님이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 아들 뭐가 되려고 하는지…"이야기의 요점은 간단했다. '우리 아들이 뭐가 되려 하는지 몰라서 걱정이다. 그리고 노력 또한 하지 않아 걱정이다. 부모인 나는 아들을 위해 이렇게 하는데…' 다시 물었다. "자녀에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아무 일도 없어요. 그런데 공부는 안하고…"아무 일도 없는데 걱정을 한다. 아무 일도 없는데 걱정을 왜 하는 것일까. 답은 불확실성이다. 입시를 앞둔 자녀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은 이내 부모의
2018.08.15 08:25
-
일전에 40대 남성을 진료한 적이 있다. 불안하다며 병원을 찾은 남성은 불안의 원인이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내가 전보다 화장이 더 밝아졌고, 전과는 다르게 옷차림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어서 수상하다는 점에서다. 자신의 남동생에게 친절하게 대하는데 남동생과 불륜관계인 것이 분명하다고 했고, 친구 부부와 같이 식사를 할 때 친구를 보고 웃는 웃음을 보니 그 친구와도 불륜관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전형적인 의처증 증상이다. 물론 이 남성은 의처증이라고 하는 병이 있는 사람이고 그 병 때문에 이런 생각을
2018.08.01 08:25
-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태국에서 홍수로 실종되어 고립되었던 태국 유소년 축구팀 12명의 소년들과 1명의 코치가 17일 만에 전원 생환되었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전파 되었다. 그 뉴스 가운데 더욱 감동적인 부분은 생존자 모두가 밝게 웃는 모습이었다. 다들 어린 나이에 어두움과 배고픔과 두려움에 얼마나 떨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와 같은 열악한 현장에서도 12명의 소년들을 이끌어 준 1명의 코치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소년들을 위하여 자신이 먹을 것을 소년들에게 나누어 주고, '희망의 명상'을
2018.07.18 08:50
-
'일베충', '문슬람' 등 단어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단어일 것이다. 일베충이라는 것은 극우성향의 웹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일컫는 말이며, 문슬람은 문재인 대통령을 극단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일컫는 단어이다.이렇게 어떤 집단을 비하해서 일컫는 것은 옳지 않지만 위와 같은 집단의 사람들이 가진 특성 또한 바람직하지는 않다. 이런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의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을 갖는다.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 배타성, 맹목적성이다. 자신들이 속한 집단
2018.07.03 16:17
-
이등병 때다. 자대배치를 받고 처음으로 축구를 하게 됐다. 연병장에 나가기 전에, 중대 막사 앞에 집합을 했다. 중대의 한 고참병사가 이렇게 말했다. "군인은 전쟁에서 지면 아무 것도 아니다. 축구도 전쟁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겨야 한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그러면 이기기 위해서 반칙을 해도 된다는 얘기인가? 천박한 놈." 나는 그 때까지 '안되면 되게하라'로 표현되는 군인정신이 무엇인지 잘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짬밥을 먹을수록, 새벽에 경계근무를
2018.06.19 13:12
-
붉은 유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유월 앞에는 '붉은'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달라붙고 있다. 붉은 유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붉은 장미이다. 담장을 타고 넘은 장미넝쿨이며, 거리 곳곳 작은 화단에서 자태를 뽐내는 장미는 여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이 됐다. 또 이제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한여름 무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태양이 붉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루가 다르게 햇살이 따가워지고, 가끔은 그런 태양이 얄미워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붉은 악마의 외침이
2018.06.05 17:05
-
어떤 지체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계단을 만났다. 휠체어를 타고서는 그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매우 힘들게 되었다. 지금 '이동에 불편함이 생긴 상황'이라는 장애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이 장애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보통,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생각을 할 수 있다. 첫째는 이 지체장애인의 다리에 의학적 손상이 생겨서 장애가 발생했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도로나 건물에 경사로 혹은 엘리베이터와 같은 편의시설이 미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 생각은 장애의 원인을 장애인 내부에서 찾는 것이며, 두 번째 생각은
2018.05.22 18:06
-
어느 봄날, 공자는 제자들에게 꿈에 대해 물었다. 자로는 3년 안에 큰 나라로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염유는 백성을 풍족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공서화는 종묘 일을 배우며 작은 보필자 역할을 하겠다고 자신의 꿈을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제자 증점에게 공자가 꿈을 묻자, 증점은 매우 부끄러워했다. 연주하고 있던 거문고를 놓으며 그는 조심스럽게 답했다."따뜻한 늦은 봄날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친구들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을 데리고 목욕을 하고, 기우제 드리는 곳에서 바람을 쐬고 난 후, 노래하며 집에 돌아오는 것입니다."모두
2018.05.08 18:32
-
이제 이번주 금요일(4월 27일)이면 '2018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지난 평창올림픽 이후로 남북, 미북 관계에 놀라운 변화가 있어왔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도출될 결과들이 어떠한 것들이 될지 기대가 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종전선언(終戰宣言)과 함께 평화협정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된다면, 민족분단의 아픔을 씻을 뿐 아니라, 세계사적 냉전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시작을 알리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급하게 '남북통일'을 이야기해서는
2018.04.24 19:44
-
해 더디 지는 봄날 강과 산은 아름다운데, 봄바람은 화초 향기 싣고 솔솔 불어오네.진흙 눅진해지니 집 지으려는 제비들 날아들고,모랫벌 따스해지니 원앙이 짝지어 노니는구나.遲日江山麗 春風花草香 泥融飛燕子 沙暖睡鴛鴦봄을 소재로 한 두보(杜甫)의 절구두수(絶句二首) 중 제 1수이다. 요즘같이 기분 좋고 여유로운 봄날을 기가 막힐 만큼 멋들어지게 표현해 낸 시가 아닌가 싶다. 봄날의 강과 산, 봄바람, 그리고 제비와 원앙은 봄내음을 가득 품고 있는 봄의 아이콘이다. 특히 제비는 봄에는 빠질 수 있는 상징 같은 조류이다. 봄을 알리고 사람에
2018.04.11 08:22
-
"이모부, 토지공개념이 뭐예요?"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조카녀석이 승용차 안에서 물었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막막해졌다. "응, 땅이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는 뜻이야." 조카는 내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새로 산 장난감에 다시 정신이 팔려있었다. 조카는 내가 규정한 토지공개념의 정의를 알아들었을까? 아니, 승용차 안에 타고 있었던 내 아내와 처제는 그 뜻을 이해했을까? 땅이 없이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렵게
2018.03.28 08:43
-
3월이 갖는 의미는 참 큰 것 같다. 봄의 시작. 새 학년의 시작. 새 학기의 시작...추위에 웅크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또는 특별한 환경을 갖추고 싶을 때, 우리는 나만의 정결한 의식 같은 것을 치르곤 한다. 방 안을 새롭게 싹 정리하고 집안 곳곳을 청소한다든지, 산이나 바다와 같은 가벼운 여행을 다녀오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각오를 다진다든지 말이다.그러한 새로움이 어디 사람에게만 속하겠는가. 겨우 내 말라 비틀어진 가지에 푸른 싹이 돋아나는 나무줄기이며, 동면하던 벌레들이 땅
2018.03.14 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