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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느라 바빠진 계절이다. 보름 즈음에 한 해 농사를 준비하던 선조들처럼 방학인 이 시기에 아이들이 누릴 즐거운 수업과 행복한 학교를 위해 준비를 한다.몇 해 전부터 분주한 이 계절에 작은 설렘이 하나 생겼다.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오래전 졸업했던 교단에 첫발을 딛는 신규선생님들을 만나는 일이다. 신규선생님들을 보면 자연스레 초임 시절이 떠오른다.어릴 적부터 꿈꾸던 선생님이 돼 부임한 첫 발령지는 육지와 좁은 길로 가늘게 연결돼 있던 경기도 서해안의 작은 학교였다. 6학급에 병설유치원이 있어서 교장·교감선생님까지 모
2020.01.31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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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환경동아리 '세단(세계 속의 단중인)'이라는 깃발을 내걸자 환경문제 인식에 공감하는 학생 20여 명이 순식간에 모였다. 환경동아리의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어떻게 하면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 인식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재미있게 공유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해답은 월별 환경 관련 기념일에 따른 오감체험형 캠페인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해당 기념일과 관련된 체험아이템들을 발굴-구안하고, 기획했다. 활동 첫 날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점심시간 교내 식당 앞에 테이블을 펴고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학생 및 교직원들을 무작정 참여시켰다
2020.01.17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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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다. 졸업을 준비하는 요즘, 아이들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다 보니 문득 교사의 학급 운영을 연애에 비유했던 어떤 선생님 말씀이 떠오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 동안 이토록 강력한 만남을 새롭게 반복해가는 연애라니.우리 반은 여학생 4명과 남학생 3명으로 총 7명이다. 다른 학교에 비하자면 고작 일곱뿐인 숫자지만 이 아이들은 온종일 자신만의 색깔로 교실을 빈틈없이 채운다. 어느 틈엔가 무럭무럭 자라나 몸집이 나보다 한 뼘씩은 더 큰 아이들은 서로 떠들고 뒹굴며 온기를 뿜어낸다. 덕분에 우리 교실은 언
2020.01.1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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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겨울이 오고 데자뷰 같이 같은 말을 했다. "26일부터 단축수업을 할 거예요. 4교시에 점심 먹고 하교합니다."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환호성이 이어질 것을 기다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낯선 정적이 2~3초 흐르고, "싫어요!", "안가면 안돼?"웅성거리는 아이들 목소리 뒤에 회장이 일어나서 말했다. "선생님, 저희들이 알차게 시간표 짜오면 저희 교실에 있어도 되나요? 꼭 안 가도 되죠?" 순간 나도 당황 했다. 단축수업을 싫어하는 아이들이라니…. 우리 반은 사이가 꽤 좋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좋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랬던 것
2020.01.03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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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단정하고 차분한 한 여학생이 자신의 글이 실린 책을 들고 국어교사와 함께 찾아왔다. 그 학생은 일상생활의 느낌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여러 차례 수상한 경력이 있는 학생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책을 받자마자 학생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글의 주제는 '시든 꽃을 피게 하는 힘'으로, 어머니의 발 부상으로 인해 12주간 병원생활을 하면서 겪은 내용이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부상이 너무나 당황스럽고 힘들었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오히려 '성장의 기회'가 됐다고 한다.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이 자
2019.12.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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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12시 50분이면 한 무리가 간식거리를 고른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간단히 챙겨 계산줄에 서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친구들과 나눠 먹을 것까지 넉넉하게 품에 안은 학생도 있다. 이들을 맞이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들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행여나 계산이 틀릴까 긴장해서다. 어쨌든 다들 표정은 즐겁다. 지난 11월 27일 추풍령중학교에 학교협동조합 매점 '추스림(Chu's林)'이 임시로 문을 열면서 생긴 새로운 풍경이다. 전교생이 42명인 작은 학교지만 하루 20분만 문을 여는 학교 매점은 아주 잘 운영되고 있다. 추풍
2019.12.2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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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아침부터 뭐가 그리 신나는지 교실 한구석에서 웃고 떠들며 놀다가 내게 다가와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뜬금 없이 "선생님! 오늘은 천사 되고 싶으세요? 악마 되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다.나는 "선생님은 매일 예쁜 천사가 되고 싶은데"라고 답했고 그 아이는 친구들한테 달려가 "얘들아, 우리 오늘 선생님 천사 만들어줄까?"라고 말했다.그러자 아이들은 "그래, 오늘 우리 잘하자"라며 교직 경력 22년 차지만 초보 1학년 교사를 쥐락펴락한다.주로 고학년을 담임했던 나는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처음 1학년을 맡게 됐다. 예상치 못 한
2019.12.13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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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선생님, 고래가 하늘에서 헤엄쳐요!", "이거 정말 우리가 만든 거 맞아요?"초롱초롱한 눈빛의 시연이가 학교 로비 천장에 매달려 있는 고래 세 마리를 보고 감탄을 한다. 눈빛을 반짝거리며 서희도 거든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만든 고래 모형이 믿기지가 않나 보다. 아름중학교 로비 공중에는 이번 자유학기제 수업에서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거대한 고래 세 마리가 헤엄을 치고 있다. 1학년 학생들이 한 학기동안 진행된 자유학기제 예술체육 프로그램 '설치미술'반에서 매주 한땀 한땀 정성들여 만든 세 마리의 고래모형이다.미술 수업을 하면
2019.12.0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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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한 햇살로 단풍을 수놓던 가을이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나뭇가지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잎새에 지나는 바람이 야속하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선생님, 갑자기 겨울이 온 것 같아요. 단풍놀이도 제대로 못 갔다 왔는데요"하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는 모습이 그저 귀엽다. 아이들의 기침소리를 들으면 후회되는 기억이 떠오른다. 첫 발령 학교에서 결혼으로 특별 휴가를 간 선생님 대신 임시 담임을 맡게 된 때였다. 그 해에 유독 감기가 급속도로 유행했다. 아이들에게 깨끗하게 손을 씻고 손톱을 깨끗이 정리해서 오면 내일 검사하겠다고 종례 시간
2019.11.2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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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활동하고 있는 충북 독서교육인문지원단에서는 요즘을 시즌이라 부른다. 11월에 있을 청소년 비경쟁독서토론 한마당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도 올해로 3년 째 참여하고 있지만, 늘 이 시즌이 기다려지고 설레는 이유는 처음 비경쟁독서토론을 접했을 때 느꼈던 강한 충격과 감동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학생들이 체육관만큼이나 넓은 강당에 100명 가까이 모여 성별, 나이, 출신 학교는 잊고 오직 대화만으로 책 속에 깊이 몰입해 가고 있었다. 그 광경은 독후감쓰기나 찬반주제토론처럼 억지로
2019.11.2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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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히고, 각자 가진 개성들을 파악하느라 온 힘을 쏟았던 학기초를 넘긴 지난 4월. 이번엔 어떤 활동으로 아이들을 뭉쳐볼까? 그래, '문장전달 전화미션'이다. 방과 후에 전화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알아본 후, 문장전달 순서를 정한다. 문장 전달할 친구끼리 하루 종일 쫑알쫑알 "전화 꼭 받아야해." 의미심장한 미소로 서로에게 당부를 잊지 않는다.오후 6시다. 첫 번째 아이에게 전화를 건다. "혜진아, 선생님이야. 지금부터 불러주는 문장 잘 받아 적어봐. 1.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바다가 됩니다. 2.
2019.11.0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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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1학년 명찰을 단 학생이 교장실로 들어왔다. 이 학생은 부탁드릴 일이 있어 왔다면서 학교에서 병아리를 키울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했다. 달걀을 부화시켜 병아리 몇 마리를 얻었는데, 이걸 학교에서 키우면서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혼자 하는 것이냐 물었더니 친구들하고 동아리를 구성했고 1학년 생물 교사가 지도교사를 맡아 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학교에 닭장을 지을만한 곳이 있느냐 물으니 야구장 끝자락에 적당한 공간이 있고 닭장을 짓는 것과 키우는 것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2019.11.0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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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우리 반 특색 사업은 책 쓰기다. 아이들에게 책 쓰기 활동을 소개하면 대개 '책을 쓴다'라는 의미를 몰라 어리둥절해 한다. '책을 쓴다'라는 말은 꽤 낯선 조합의 문장일 수 있다. 아이들에게 책이란 '읽는 것'이라 생각해 왔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 책 쓰기의 목표는 '소설 쓰기'다. 일기나 간단한 글감으로 쓴 글을 모아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소설을 써야 한다. 이런 장대한 꿈을 처음엔 살짝 감춘다. 사자가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듯이. 아이들이 어느 정도 글과 친해질 때까지, 상상력을 조금씩 내보일 때까지 낮은 포
2019.10.2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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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교사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돌이켜 보면 교과교육, 상담, 행사 진행, 업무, 평가 등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모든 교사들의 동일한 일임에도 신규교사 3년차는 더 고된 시간을 보내온 것 마냥 앓는 소리를 해본다. 바쁜 와중에도 그 속에는 희로애락이 다 있었으니 보람 있는 삶을 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반면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교직을 그만두고 싶은 충동이 문득문득 든다.그간 학생들을 위해 나름 애써왔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 프로젝트를 함께 해봤다. UCC를 만들
2019.10.1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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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 오 분. 작년에 내가 지도했던 책쓰기 동아리에서 아이들이 원고를 완성하고 책 제목을 정하던, 열정이 깊은 시간이다. 아이들은 이것을 제목으로 결정했다. 아마 책이 완성되는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었던 듯하다. 지난해 나는 세종시 전의면의 작은 학교인 전의중학교에 근무하면서 책쓰기 동아리인 '독쓸신잡(책 읽고, 글 쓰고, 신나게, JOB탐색)'을 운영했다. 동아리의 목적은 문학 관련 활동을 하고 각자의 원고를 써서 책을 출판하며 궁극적으로는 직업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봄날 운동장에 앉아 클래식 선율에 맞춰 시를 낭송했던
2019.10.11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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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전국의 특성화고가 헤어나기 힘든 상황에 빠져 들고있다. 학령인구가 급감하고 있는데다 산업현장에서의 근로자 및 현장실습생 사고가 특성화고에 대한 학부모들의 생각을 부정적으로 바꾸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듯하다. 특히 기계·전기·전자 등 공업계 특성화고등학교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반면 조리·제과제빵·토탈미용 등 가사계열은 상대적으로 학생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공업계 특성화고 중 일부는 가사계열 학과로 개편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몇 년 반복되다 보
2019.10.0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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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문학기행은 "한 번도 시도해 본적이 없는데 초등학생이 가능할까요?", "이동거리가 상당한데 아이들이 힘들지 않을까요?"란 가능성보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사실이었습니다.하지만 2018년부터 미리 미리 준비하고 관련 전문가의 조언과 협조를 구하며 차분하게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드디어 2019학년도가 되어 기대 반 우려 반의 남도 문학기행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남도 문학기행의 방향은 세 가지로 설정하였는데 첫째, 전통문화를 오감으로 접하며 나의 삶의 무늬를 고민해보고 둘째, 우리 문학과 전통음악을 느끼며
2019.09.27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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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솔바람 소리와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오늘따라 더 크고 다정하게 들린다.4년 전 공모교장이라는 무거움과 설렘으로 송간초와 인연을 맺었을 때, 때늦은 산모기와 잡목으로 우거진 솔숲을 헤매며 독충과 뱀으로부터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부임 전 멘토교장으로부터 들었던 그 솔숲은 체육관을 짓기 좋은 장소라 해 살펴봤더니 체육관을 짓기엔 경사도 심하고 운동장도 희생해야 할 듯했다.그러던 중 운영위원장으로부터 솔밭은 졸업생들의 추억이 서린 공간이라는 말을 듣고 이곳을 우리학교의 랜드마크로 만들기 위해 모든
2019.09.2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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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꿈이 선생님이었던 나는 푸른 꿈을 갖고 설렌 마음으로 처음 발령받은 학교로 갔다. '대학 때 배운 교과 지식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과 함께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새 수업준비를 했다. 내가 준비한 수업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생각에 학교 출근 시간이 즐거웠고 수업이 기다려졌다. 하지만 수업시간 때 자는 아이, 떠드는 아이,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 때문에 나는 실망과 함께 열정이 사라져갔다. 나의 열정은 스트레스로 바뀌었고 '열심히 수업 준비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감과 함께 수업준
2019.09.06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