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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꼭 400년 전인 1622년, 대전에 살던 송담 송남수(1537-1626)는 우리나라를 유람해 기록한 해동산천록(海東山川錄)을 완성했다. 그는 책을 만들고 나서 책의 끝에 자신은 젊어서부터 산수 유람을 아주 좋아해서 벼슬살이 중에도 틈틈이 경치 좋은 곳을 여행했다고 하면서 횟수도 모두 31회에 이른다고 했다.그는 나이가 90세 가까이 되니 옛 생각도 나고 다시 여행하고픈 아쉬움을 담아 그동안 가본 곳을 기록하고 가보지 못한 곳은 관련 지리지 등의 기록을 찾아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또, 이 책을 집에서 펴 보고
2022.04.0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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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 아마릴리스가 붉게 새 꽃망울을 터트렸다. 1주 사이로 하나. 둘. 셋. 어찌나 이쁜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마릴리스부터 확인하게 되는 봄 3월이다. 주홍색의 화려한 꽃을 보니 문득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리하여 1923년 12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1977년 9월까지 54세의 일기로 짧고 화려한 삶을 살고 간 칼라스를 이야기하고 싶다.본명은 칼로게로 풀로스였고, 그의 부모는 그가 13살이던 해에 두 딸의 공부를 위해 약국을 팔고 고향인 그리스로 건너갔다. 칼라스는 14세부터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2022.03.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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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라는 표현을 종종 듣게 된다. 사람이 아닌 커피를 공손하게 나오셨다고 하는 게 문법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얼마나 괴상한 지에 대해서는 이미 전문가나 매스컴에서 많이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카페 직원들의 몰상식으로 쉽게 치부해 버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신지영 교수는 그의 책 언어의 높이뛰기, 2021를 통해서 이런 공손성의 요구 뒤에 숨은 일상의 갑질에 주목한다. "어색한 표현이더라도 손님들 기분 안 나쁘게 하는 게 더 낫다"라는 말을 전해 들으며
2022.03.22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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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제 잘난 맛으로 산다. 조선 시대 소인배로 지목받은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가 유자광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한 그는 부친의 사랑을 받으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시재도 뛰어났고 두뇌도 명석한 그는 출세하려는 욕망을 품었다. 그러나 자신이 과거시험을 볼 수 없는 서얼 신분임을 알게 됐다. 어머니가 노비 출신이었다. 학문을 포기한 유자광은 갑사(甲士)가 돼 남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1467년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유자광은 조정에 상소문을 올렸다. 자신도 반란군을 진압하는 데 참가해 역적
2022.03.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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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박물관에 일제강점기 대전지역에 있던 병원을 소개하는 일종의 전단지 같은 자료에 대한 기증문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대수롭지 않은 자료일 수 있었다. 그러나 기증을 신청한 분의 말씀에 따르면 이 병원을 운영하던 의사는 3·1운동 참여자라 했다. 그러니 병원의 홍보 전단지에 불과할 수도 있는 이 자료는, 어떻게 보면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지역 관련성을 갖는 유물이나 자료는 단순히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할 수 없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유물이나 자료가 탄생한 지역에 있을 때
2022.03.0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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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쯤 전 모 채널을 통해 방송된 드라마 나빌레라에는 발레를 배우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나이 일흔에 발레 연습실을 찾아가는 덕출 할아버지(박인환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는 말한다. 어려서는 하고 싶은 걸 감히 말해 볼 수도 없었고 커서는 먹고 사는 문제로 가족들 건사하느라 꿈도 못 꿨던 거 이제야 겨우 해보려고 하는 거라고. 할아버지와 발레라는 생소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걸로 기억한다.가스통 바슐라르는 "인간은 욕구(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바람)의 창조물이 아니라 욕망(삶
2022.02.2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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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비친 정지상과 김부식은 경쟁자의 관계이다. 이는 묘청의 난과 관련이 있다. 묘청은 풍수지설에 따라 고려의 수도를 서경으로 천도하자고 주장했다. 조정의 신하들을 만나면 그는 개경의 지기가 쇠하고 평양의 지리적 장점을 들어 설득했다. 인종도 묘청의 초대를 받아 자주 평양을 왕래했다. 평양에 천도하려는 묘청의 계획이 거의 성사되려고 할 때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이 김부식이었다.김부식의 반대에 부딪혀 평양 천도가 좌절되자 묘청은 반란을 일으켰다. 평양과 개경 사이는 대략 140㎞ 정도 떨어져 있다. 가까운 거리에서 묘청의 반란이 갑자
2022.02.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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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병에 시골 가난한 집에서 갑작스럽게 널리 여러 처방을 살피고 귀중한 약재를 찾아 쓰기 어렵다."이 말은 조선후기 우리 고장에 살았던 유학자이자 의술에 매우 뛰어났던 주촌 신만(1620-1669)이 아이들의 여러 가지 질병에 대해 가장 많은 처방전을 수록한 의약서적 보유신편(保幼新編)을 지으며 지적한 말이다.필자는 오래 전 진잠지역 관련 지리지를 살펴보다가 주촌 옛터[舟村舊址]라는 항목에 주목했다. 주촌 신만이 살던 곳이란 의미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까닭으로 기록돼 있는지가 늘 의문이었다. 그러다가 신만의 호를 딴 의약
2022.02.0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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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는 공간예술과 시간예술이 있다. 그 중 음악(작곡 제외)은 시간예술에 속하는데, 공연을 주로 하는 음악가들에게는 문화산업 쪽으로 접목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특히 대중음악이 아닌 클래식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 순수 공연을 단지 경제적인 잣대를 들이대기란 쉽지 않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순수예술도 경제성을 따지는 시대에 접어들었으나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25년 전쯤 성악 애호가인 카이스트의 한 공학 교수를 가르치는 가운데 그분이 필자에게 "앞으로는 음악을 우리 공대에서 만들게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가 필자
2022.01.2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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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직장생활하면서 종무식만 참여했었지, 시무식 참여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 4년 전 들었던 이 말은 그 이후 시무식을 할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역시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함께 했던 몇몇 직원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대부분의 문화재단이 비슷한 상황일 텐데 사업은 보통 1년 단위로 진행된다. 지원사업을 예로들면 연 초에 사업을 공모하고 심의를 통해 지원 예술인을 선정한 후 예산 교부와 정산작업을 끝으로 사업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리고 기간제 직원들은 연 초 채용공모 과정을 거
2022.01.1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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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대통령 후보를 중심으로 말들이 무성하다. 말 한마디에 민심의 향방이 엇갈리기도 하며 여론이 비등하기도 한다. 상대방을 공격하고 후보자를 옹호하는 말들을 듣고 유권자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말이란 사고의 표현 수단이다. 자신의 뜻과 생각을 음성이나 문자기호로 표현되는 것이 말이다. 말을 통해 상대방의 의도를 알기도 하고 내 뜻을 전하기도 한다. 사람은 지략(智略)이 있어서 말과 속셈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 말을 듣고 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학교 회의 석상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번은 총장이 주요보직자가
2022.01.1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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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울이 한창인데 벌써 봄이 기다려진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다고 하지 않던가. 잠시나마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미디어 영상 특별전이 지금 대전시립박물관에서 펼쳐지고 있다. 고산구곡(高山九曲)을 그린 고산구곡도는 율곡 이이(李珥, 1536-1584)가 제자들과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황해도 해주 고산 석담리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시립박물관이 소장한 고산구곡도는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1606-1672) 후손가에 전해오고 있었는데, 가로로 2m가 넘은 긴 두루마리 형태를 띠고 있다.그림 위에는 율곡이 지은 10수의
2022.01.0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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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의 열풍이 거셌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전세계가 열광했던 오징어게임은 넷플리스 서비스국가 94개국에서 1위를 하며 넷플리스 시가 총액이 약 33조 원 상승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선 '생존 서바이벌'이라는 잔혹성 등 때문에 외면당했다고 한다. 한동안 잊혔던 오징어게임 드라마를 보며 우리의 전통놀이가 세계적인 놀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드라마의 소재가 됐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홀·짝', '달고나', '줄다리기' 등은 어릴 적 친구들과 동네에서 혹은 학교운동회 때 즐겼던 놀이였다. 특히 현재 50-60대는
2021.12.2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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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클럽 준비에 대한 글을 이어가보자. 지난 11월 23일의 글에선 내년 6월부터 시행될 스포츠클럽법과 관련하여 준비할 두 가지를 말했다. 운동시설 확보와 지도자 풀 형성. 여기에선 좀 더 급진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제목이 말하듯, 지역민의 스포츠 활동을 관리해 줄 시스템 설계가 그 주제다. 스포츠클럽은 바로 이 시스템 속에서 작동해야 한다. 핵심은 지역민의 스포츠 활동을 체계적으로 보살펴 주는 것. 당연히 그 시스템은 유료 회원 기반으로 돌아가야 한다. 스포츠 활동은 공짜라는 인식, 이젠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사람들은 왜
2021.12.2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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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세계는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는 설렘부터 카타르시스와 힐링까지 이르는 아름다운 여정이기에 신비하고 경이롭다. 하지만 공연장을 자주 찾지 못하여 익숙하지 않다 보니 감동적인 예술이 펼쳐지는 공간에 가면 매우 조심스럽다. 단도직입으로 극장은 상식과 배려만 염두에 두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처음 극장을 방문하는 누구라도 주저함과 어색함 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미리 오리엔테이션을 해보자.이에 앞서 클래식애호가 탤런트 강석우는 극장에 갈 때 스카프×생수×사탕을 준비한다고 했다. 공연장은 최적화된 음향 컨디션 유지를 위해 공
2021.12.1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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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집에서 선(禪)체조 후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거창한 '룰루랄라산악회' 소속도 아니고 익스트림 스포츠의 놀이터가 된 아이거(Eiger) 북벽(Nordwand)을 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휴일에 산보 삼아 야산(野山)에 가볍게 오른다.이 계절이면 산은 몸매를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무성한 잎들로 덮여있던 여름을 벗어버린 가을을 지나 낙엽들이 땅을 덮고 있다. 말라버린 잎들을 밟는 것도 미안하다. 가끔 꼭 필요한가 싶은 리본들이 보이기도 한다. 인간들과 달리 한 곳에 정착하여 죽을 때까지 한 곳에서만 터를 내리고 사는
2021.12.0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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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형, 2021년도 달력이 덩그러니 한 장만이 걸려있습니다. 올해도 코로나 그물망에 촘촘히 걸려 허둥지둥 넘어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C형, 우리 사회초년생 새내기 시절, 술잔 부딪치며 직장 상사를 안주삼아 속풀이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곤 다음날 언제 그랬듯, 상사에게 살포시 커피 타 드리곤 했지요. 유독 저한테만 나무라셨던 상사분이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말도 안한다는 말에 위안을 삼고 용기를 열심히 일했던 생각이 납니다. C형, 한 달 전에 80을 훌쩍 넘기신 아버님 같은 그상사분과 식사를 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뵙는데도 옛 얘
2021.11.3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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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만나 꾸준히 운동할 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가능해진다.' 이 말에 반박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이처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 바로 '스포츠클럽'이다. 내년 6월까지 각 지역에 스포츠클럽 체계를 갖추라고 '스포츠클럽법'이 제정된 이유다. 올해 제정됐고, 1년의 준비기간을 두고 내년부터 시행된다. 핵심은 지역민들이 편하게 스포츠를 즐기도록 스포츠클럽 환경을 만들라는 것이다. 법의 핵심은 '등록제'와 '지정제'다.등록제는 기존 동호회나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지자체에 '○○스포츠클럽'으
2021.11.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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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기심으로 루틴을 상실한 지구기후의 불규칙성은 이제 뉴스도 아닌 채 불청객처럼 일상을 침범한다. 엄혹한 추위는 빈부를 가리지 않고 득돌같이 급습한다. 돌이켜보면 예전 겨울은 몸 하나 따뜻하면 그리 아쉬울 것 없던 단순한 시절이었다. 음력 절기 입동을 지나 소설이나 대설 무렵이면 분주해진 어머니는 큰 눈 올세라 정성껏 200포기 김치를 담갔고 80킬로 쌀 한 가마에 연탄 500장쯤 부엌 옆 창고에 쌓아둔 후에야 어려운 숙제를 마친 학생처럼 시름을 놓으셨다.당시 김장,쌀,연탄은 겨우살이 3대 필수품이었다. 연탄은 아궁이라 불리는
2021.11.16 0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