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진중에 어느 것이 왕의 장식인지 물어보면 열 중 여덟은 정답을 못맞춘다. 두 관이 비슷한 것 같지만 흐름은 다르다. 왕비관이 대칭이며 엄한 느낌이 장중하게 흐르는 반면 왕관은 부드럽게 물 흐르듯 비대칭으로 한쪽이 내려앉아있다. 이렇게 부드럽고 유려한데 왕관이라는 것이 의아하지 아니한가. 알고 봐도 조금 낯설다.

백제왕관과 신라왕관도 비교해보면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

신라의 왕관은 자연의 모습을 형상화한 출(한문)자형의 나뭇가지와 사슴뿔, 용의 뿔의 형상을 높고 크게해 왕의 위엄을 느끼게하는 관이지만 백제 무령왕관은 장식을 관의 양옆에 꽂아 온화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장식문양 역시 연꽃과 타오르는 불의 느낌을 더 은유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해 불교융성국가의 문화를 아주 정제된 모습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관을 탄생시킨 백제의 문화적 배경들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 불려지는 근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비내리는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하게 된 무령왕능. 거기에 남아있는 선명한 왕과 왕비관의 장식품. 백제의 복식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30년 전쯤 어린 시절 어느 중요한 신년 모임이 있었다. 모두 한복을 입고 오기로 했다. 이옷 저옷을 고르다 늘 독특함을 추구했던 터라 새로 만들어 입다보니 지금의 한복이 아닌 조용한 백제 복식의 느낌으로 흘렀던 것이 생각난다. 한복이란 늘 조선시대 옷으로만 정리돼 있던 뇌 속에서 나도 모르게 천오백년전의 의상이 떠올랐던 것이다. 모임을 같이한 사람들에게 왜 이런 옷을 입었냐고 한마디씩 들었지만 적당한 설명을 하지 못한 채 미소로만 응답했던 기억이 지금에 와서는 좀 아쉽다. 한복은 조선 오백년의 옷만이 아닌 우리 오천년의 옷인데 말이다.

단군에서 시작된 우리의 옷이 천오백년전에 화려하게 꽃피웠음을 상기하며 우리의 전통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해주는 과거의 우리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후대에 당신의 문화를 이렇게 소중하게 남겨준 무령왕. 고맙습니다. 권진순 한복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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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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