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통의 전화로 기쁜 소식이 왔다.

몽골 울란바토르 한국 대사관에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도록 패션쇼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궁중한복 현대한복, 모던한 패션까지 모두 보여달라는 쉽지 않은 요청이었다. 한복의 모든 분야에 경험이 있는 오지랖이 있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이지만 늘 해왔던 터라 쉽게 대답했다. 조선시대라고 한정한 것이 아쉬워 백제복식으로 범위를 넓히자고 제안했더니 생각치 못한 발상이라며 더 반겼다.

신이나서 중국과 우리의 사료, 여러 논문, 출토품들을 찾아보고 무령왕의 복식을 재현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어떻게 생겼으며 무슨 색인지 또 기록에도 없는 문양들은 어디에 어떻게 넣을지 옷감은 도대체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고 연구할수록 산넘어 산.

유물 한 점 없는 백제 복식을 제작해 해외에 내놓는 일은 생각보다 홀로 책임감이 무거웠다. 내가 제작한 왕복이 곧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몽골의 전통의상들은 기마민족의 특성으로 기백이 있고 힘찬 반면에 우리의 왕복은 조용해서 자칫하면 초라해질 수도 있어 걱정 또 걱정이었다. 일단 사료를 종합하고 여러 문양들 중에 발췌해 다시 재편집하는 방식으로 왕복문양을 디자인했고 금실로 수를 놓았다. 새로 창작처럼 재현해낼 수 밖에 없는 현실 앞에 1500년 전 해외로 진출한 해양성국으로서의 백제를 제대로 표현하면서도 힘과 깊이가 느껴지는 옷으로 만들고 싶었다. 우리의 숭고한 역사, 조용히 잠자고 있던 백제의 힘을 다시 느끼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 입어 왔던 왕복의 분위기와는 좀 달라져야 했다. 백제문화를 지켜내는 책임감과 문화 재창조라는 명분으로 디자인과 문양을 과감히 전환했다. 이러한 발상에 그 누구라도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지적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감히 제작에 임했다. 많은 제작비가 필요했고 두 달이라는 제작기간이 길기도 했지만 완성해가는 과정 내내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했다.

드디어 예전 같으면 말을 탔을 무령왕은 몽골행 비행기를 탔다. 준엄하고 화려하게 한걸음 한걸음 신한류를 예견하며 그 옛날 한국을 호령했던 몽골인 앞에 당당히 섰다. 권진순 한복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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