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중심 탄방동에 낮고 아담한 작은 숲 공원이 있다. 줄지어 다니는 자동차와 틈없는 집들, 도시소음 가득한 시내 한가운데 청정함을 선물하는 산소같은 남선공원. 어릴적 그 언저리에 살았는데 그때는 휘고 틀어진 소나무와 참나무가 많은 깊고 큰 산이라고 생각했었다.

고사리 꺽고 밤털고 산딸기 따느라 풀섶가시에 종아리 긁히며 헤집고 다녔던 추억의 동산 그 중심에는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가렴주구에 견디다 못해 죽창을 들고 가난을 호소하다 죽어간 양민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세워진 기념탑이 있다.

가난이 죄였던 그들은 움직일 수 없는 동상이 되어 내 가슴에 억울함을 던지곤 한다. 그럴때면 나는 영혼을 달래주는 기도와 함께 2009년 어느 여름 밤, 화려하고 장대하게 펼쳐졌던 수상뮤지컬 `갑천`을 떠올리며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10년 전, 어느 문화인들끼리의 대화 속에서 호기심 가득한 일이 벌어졌다. 장예모 감독의 `인상유삼저`라는 극을 보고 우리 대전에서 더 창의적으로 한번 해보자는 당찬 이야기가 나왔다. 대전은 중국 계림의 산수와는 비교가 될 수 없었지만 숯굽던 숯뱅이(탄방동)에 살던 망이망소이의 난을 주제로 수상뮤지컬을 만든다면 전국 최초 최대의 역사적 공연이될거라는 소름돋는 기획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은 벌써 800년 전 고려 숯뱅이로 향했다. 눈은 반짝 심장은 쿵쾅. 내 머리속은 경험해보지도 못한 핍박과 가난을 상상하며 순식간에 그들의 의상들이 머리속을 스치고 있었다. 빨리 재현해보고 싶은 열망에 어두운 밤에는 간 적도 없던 원단 창고를 무서운 줄도 모르고 혼자 샅샅이 뒤졌다. `이거다` 싶었다가 아니라고 고개를 내젓기도 하고 환희처럼 떠오른 디자인이라도 원단을 보면 맞지않아 이내 실망으로 돌아서고…. 만족과 실망사이를 얼마나 오갔는지….

그러나 내가 생각한 의상으로 시대를 다시 재현해낸다는 기쁨은 가슴을 뛰게했다. `의로운 망이 망소이`. 여린 분이, 동네노인, 아이들. 채원부, 말 탄 장군, 군사들까지 자그마치 1600여 명. 어서 오세요. 모두 이 옷 입고 우리와 같이 이야기해요. 억울함을 말해봐요.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옛날을 얘기하며 우리 갑천에서 다시 만나요. 800살 숯뱅이 어르신들! 권진순 한복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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