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설립됐다. 하지만 13일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최초의 한국은행권인 1000원권과 100원권은 7월 22일 피난지인 대구에서 발행됐다. 1000원권은 이승만 대통령 초상을, 100원권은 광화문을 각각 디자인 소재로 사용했다. 당시 은행권은 일본에서 제조됐는데 1951년 한국조폐공사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인쇄기술로 은행권을 만들 수 있었다.

한국은행이 설립됨에 따라 현대금융이론에 입각한 통화제도가 채택됐고 1950년, 1953년, 1962년 세 차례의 화폐개혁이 이뤄졌다. 2차 화폐개혁으로 화폐 단위가 원에서 환으로 바뀌었고, 3차 화폐개혁을 통해 다시 원으로 변경됐다. 1970년대 이후에는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고액권인 만원권이 등장했다.

화폐개혁 과정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1965년 3월 발행된 `오백환권`에는 이승만 대통령 초상이 그려져 있다. 대통령 초상이 가운데 있어 얼굴이 접히고 구겨지는데다 중앙의 접힌 부분이 마모돼 보기 흉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함에 따라 1958년 초상의 위치를 오른쪽으로 옮긴 `신 오백환권`이 발행됐다.

결국 1960년 4·19혁명 이후 새로운 디자인의 은행권이 등장했다. 초상 인물로 이승만 대통령 대신 세종대왕이 등장한 `천환권`과 `오백환권`이 1960년과 1961년에 각각 발행됐다. 그리고 액면, 한국은행권 등 화폐에 표시되는 문자가 한문에서 한글로 바뀌었다. 세종대왕 초상이 등장한 최초의 한글 표시 은행권이었다. 또 지금처럼 순수 한글인 `원`으로 화폐 단위가 바뀐 것은 1962년 6월 10일이다.

우리 화폐역사의 최단명 은행권이 발행된 것은 1962년 5월 백환권이다. 이 백환권은 국민의 저축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흐뭇한 표정으로 저축통장을 들고 있는 어머니와 아들을 디자인 소재로 채택했다. 모자상을 그린 백환권은 일반인을 모델로 한 최초의 은행권이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발표된 화폐개혁으로 발행한지 20여일 만에 유통이 금지돼 역사상 수명이 가장 짧은 은행권으로 기록됐다.

이후 경제성장과 함께 거래 단위가 커져 고액권 필요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1972년 6월부터 만원권을 발행하려고 했으나 당시 공고된 만원권의 석굴암과 불국사 디자인이 특정 종교에 치우쳤다는 비판에 따라 일년 뒤인 1973년 6월부터 세종대왕 초상과 경북궁 근정전으로 디자인이 바꿔 발행됐다. 하지만 이미 석굴암 불상을 은화로 삽입한 용지가 제조됐기 때문에 은화에는 석굴암 불상이 들어갔다.

1972년에 나온 5000원권 속 율곡 이이는 코가 오똑하고 눈매도 날카롭고 서양사람 같은 외모 때문에 국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 화폐 제조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은행권의 원판은 영국의 토마스 데라루사에 의뢰해 제작됐다. 결국 1977년 율곡 이이의 얼굴을 고쳐 오천원권을 다시 발행했다.

이후 한국은행은 새로운 첨단 위조방지 장치와 사용자의 편리를 위해 5000원권을 2006년에, 만원권과 1000원권을 2007년에 각각 새로 발행했다. 또 1973년 이후 만원권이 36년간 최고액면권 자리를 지켜왔으나 경제 성장으로 고액권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2009년 5만원권이 새로 나왔다. 김재민 한국조폐공사 디자인연구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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