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은 예술과 디자인의 영역에서 시각표현 방식을 심화하고 확장했다. 기술은 진보를 통해 전통적 표현방식을 넘어 또 다른 재현을 이끌어냄으로써 형식을 해체하고 미학적 패러다임 변화의 기초를 제공한다. 은행권 또한 다양한 기술의 수용에 따라 새로운 형식을 갖추게 됐다.

기술 발전은 화폐 제조방식에 크게 두가지의 변화를 가져왔다. 위조의 급증으로 인한 최첨단 위조방지 기술 도입의 필요성 증대와 재료 및 소재의 융합을 통한 다양한 시각요소의 변화가 그것이다. 은행권의 이미지 표현은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의 중첩으로 완성되며, 이 중첩 구조는 다양한 위조방지요소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일반 제품과 차별되는 은행권의 큰 특징으로, 화폐가 신뢰성을 확보·유지하기 위해 위조방지 요소가 갖는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뜻한다.

은행권 디자인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될까. 일반적으로 은행권은 제품 설계에서 최종 결과물까지 최소 2년 정도가 소요된다. 제품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인 제반사항을 기획하는 단계이다. 은행권은 법정 화폐로서 발권력을 가진 한국은행의 요청에 따라 국가 정체성을 대표할 소재와 구성에 대한 기획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자료조사와 고증문제를 논의하고 디자인의 미적 측면과 위조방지장치의 기능적 측면에 대한 검토회의가 이뤄진다. 화폐도안자문위원회를 통해 디자인 주·부제 및 색상 등 기본사항을 선정하게 된다.

이어 디자인을 위한 기본스케치를 수행한다. 디자인의 미적 측면과 위조방지장치의 기능적 고려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최종 정밀스케치를 완성한다. 정밀스케치는 인쇄방식에 따라 분리해 스케치하게 되며,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최종 디자인이 완성되고 정부 승인 및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에 의해 확정된다.

은행권 디자인은 화폐 고유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규격화된 형태, 통일된 디자인, 금액의 표시, 강제 통용력 등과 같은 기본조건을 충분히 협의해 결정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를 고려한 위조방지장치의 설계이다. 위조방지장치는 크게 세가지 단계로 설계된다. 이는 사용자가 위조 은행권을 가려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첫째, `들여다보기(Look)`. 숨은 그림처럼 숨겨진 부분을 확인하는 식별 방법이다. 현재 사용되는 은행권의 경우 각 권종마다 초상과 동일한 형태의 은화가 왼쪽에 숨겨져 있다. 둘째, `느껴보기(Feel)`. 은행권 표면의 오돌토돌한 촉각요소를 손으로 만져봄으로써 진위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인물초상이 대표적이다. 초상은 요판인쇄 방식으로 인쇄돼 오돌토돌하게 느껴져야 진짜 화폐이다. 셋째, `기울여보기`(tilt). 오만원권에 표현된 띠형 홀로그램이나 입체형 부분노출은 선처럼 각도에 따라 숫자나 모양 또는 형태가 동적으로 표현된다. 이처럼 은행권은 다양한 위조방지장치를 통해 공감각적 요소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사용자의 흥미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디자인된다.

<김재민 한국조폐공사 디자인연구센터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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