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실학자인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에는 벽돌의 견고함에 대해 설명하는 박제가(朴齊家)의 대화에 다음과 같이 석회가 언급되었다. `벽돌은 석회로 붙이면, 마치 아교풀로 나무를 붙이고 붕사로 쇳덩이를 접착한 것과 같네. 만 개의 벽돌이 하나로 뭉쳐 아교처럼 하나의 성을 이루네.`

석회는 예로부터 건물이나 성곽, 무덤, 벽화 등 건축문화재 뿐만 아니라 예술품, 약재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심심치 않게 회(灰)라는 단어가 출현하여 석회의 쓰임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숙종실록`에는 1711년(숙종 37년) 4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북한성 역사(役事)에 석회가 9638석이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지금의 무게로 환산하면 무려 1400톤 정도 되는 엄청난 양이다. 또한 국가에서 신하나 그 가족의 장례용 물품으로 회곽묘를 만드는데 사용할 석회를 지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궁궐이나 성곽, 왕실의 묘를 짓는 공사에 대해 기록한 `산릉도감의궤`와 `영건의궤`에는 석회의 재료 구성이 자세히 기록되어 전해진다. 전통적인 회반죽은 유회(油灰), 수회(水灰), 양상도회(樑上塗灰)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쓰임새에 따라 석회와 모래 외에 들기름, 종이여물, 쌀풀, 느릅나무껍질 달인 물 등 첨가물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중요하고 귀한 재료로 여겨진 석회는 포틀랜드 시멘트의 생산 이후로 현대 건축 현장에서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포틀랜드 시멘트는 석회와 비교했을 때 내구성이 높고 작업성이 좋기 때문에 회반죽을 대체하는 재료로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문화재 수리용 재료를 제외하고는 건축 재료로서 소비되는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현재 문화재 수리 기준인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는 전통 석회의 제조법과 다소 차이가 있다. 표준시방서의 회반죽은 생석회를 피워서 만든 소석회에 모래나 자갈과 같은 골재를 섞어 만들며 용도에 따라 종이여물, 흙, 해초풀 끓인 물 등을 첨가하여 전통 기법을 재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배합재료의 준비과정 및 배합비율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고증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전통 건축물에서 채취한 회반죽을 바탕으로 재료의 성분과 배합비율을 규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통 석회의 제조기법 및 시공법에 대한 국내 연구도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문화재 수리·복원 시 전통 재료와 제작기법에 대한 기준은 아직까지 끊이지 않는 논쟁거리이지만 시대가 지날수록 문화유산을 인식하는 가치와 접근 방법이 변화하고 문화재 보존에 대한 시각도 바뀌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문화재를 보존·복원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주체도 변화하는 상황에서 전통 재료와 시공법을 현대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문화재가 진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수리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강소영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