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병배 논설위원
라병배 논설위원
지난 14일 이낙연 총리의 `KTX 세종역 신설 불능` 입장 언급은 미묘한 정치적 사건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편의상 명명하면 `세종역 면담`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얼핏 사건의 진행 경과는 단순해 보인다. 이 총리는 당일 일단의 호남 출신 의원들 방문을 받는다. 이 총리를 찾아간 사람들은 이른바 `세호추`(세종역 경유 호남선 KTX 직선화 추진 의원 모임 약칭으로 호남 지역구 의원 28명) 주요 멤버들이다.

이들은 이 총리로부터 원하는 답변을 얻는 데 실패했다. 어떻게 보면 싱거운 결말이다. 빈손으로 갔다 빈손으로 되돌아온 것일 뿐이라고 자위하면 그만이겠지만 적잖이 체면을 구겼다. 그 결과 `세호추`라는 모임체의 핵심 존립 기반도 허물어진 것이나 다름 없다. 이 총리가 세종역을 불수용함으로써 세종역 신설이 전제된 `세호추`는 무력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명맥을 유지하려면 이름을 수리해 쓰든 하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상황 전개에 대한 셈법은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세종역 이슈는 간이역 한곳 추가 설치를 둘러싼 인접 지자체간, 해당 지역 정치세력 간 갈등 사안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면서 그 이면엔 정치적 역학관계가 작동하고 있음을 가정할 때 정책적 당위 영역을 뛰어넘는 특별한 게임의 성격을 띠는 것도 사실이다. 여권 실세로 통하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핵심 인물로 등장하는 구조라서 더욱 그렇다.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은 이 대표의 정책적 의지, 더 세게 표현하면 그의 정치적 철학을 상징하는 중심 테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세종역은 세종시의 부분집합이고 그러므로 이 대표 입장에서 세종역 신설을 추동하는 것은 당연한 지향일 수 있다. 국회분원(세종의사당) 설치도 넓게 되면 비슷한 맥락으로 간주된다. 세종시는 여전히 미완의 행정수도이고 그 결핍을 메우고 채워야 하 일이 적지 않다. 이해관계가 첨예하지만 철도망 인프라 확충만 해도 예외일 수는 없다.

역설 하나. `세호추` 사람들의 무임승차 발상이다. 이들이 필요 이상 앞서나가는 바람에 세종역 신설 정책은 1차 정치적 내상을 입었다. 완전 폐기 단계로 갈지 나중에 불씨가 살아날지 지금으로선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분쟁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외부 세력이 판을 키우고 나선 데다 성급함을 노정한 것도 낭패를 자초한 결정적 요인으로 지적된다. 타이밍이 좋지 않아 이 시국에 이 총리를 찾아 간들 긍정반응이 나올 리 만무였다.

역설 둘. `세호추`의 미필적 고의성 여부다. 이들의 주장은 외견상 세종역 신설에 힘을 실어주려는 것으로 비쳤다. 세종시+호남 정치권이 결합하는 그림은 일을 밀어붙이는데 충분히 강력할 수 있어서다. 예상은 빗나갔다. 이 총리 단독 면담이라는 임의의 카드를 잘못 빼어 들면서 입맛을 다신 꼴이 됐다. 비유컨대 전시작전권도 없는 상태에서 이 총리와 전시담판을 벌이는 모습을 연출했으니 협상력 면에서 일방적으로 밀렸다.

역설 셋. 이 대표와 이 총리의 대결 구도에 대한 추론이다. 세종역은 이 대표의 공약이고 세종시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형국이다. 형식상 `세호추`가 이 총리에게서 퇴짜를 맞았지만 그 파장은 이 대표에게까지 미치게 돼 있다. 정부 2인자인 이 총리가 세종역을 비토했다는 것은 이 대표와 해법이 다름을 방증한다. 이 대표 특유의 리더십과 정치적 권위가 배척된 것은 아닌지 궁금해하는 시각이 나오는 지점이다.

세종역에서 언뜻 여권내 파워 경합의 그림자가 비치는 듯하다. 엉뚱한 상상이고 맹랑한 소리이긴 하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라고 앞으로 일은 모르는 법이다. 세종역 담론이 사그라지지 않을 경우, 또는 여권의 권력지형에 변화가 생길 경우 세종역은 언제든 정치적 활화산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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