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이은 부고에 지친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다. 사람과의 거리에 상관없이 부고는 늘 그 사람과의 기억을 정리하게 만든다. 그리고 상을 치르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기도한다. 친구의 어머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시는 일이 있었고, 석사 논문을 지도해주시던 은사님의 어머님이 하늘의 부름을 받아 가셨다. 두 분 모두 평안하시길 바라며, 이 글은 장례에 관한 표현 몇 가지를 두고 써 내려가고자 한다.

아직도 `부음(訃音)`이라는 용어는 `부고(訃告)`와 함께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기술표준원에서는 이는 일본식 장례 용어가 남아 있어 혼용되는 것이므로, `부고`로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유독 장례 용어에는 일본식 표기나 왜곡된 표현이 많은데, 이에 `납골당`을 `봉안당`으로 `영안실`을 `안치실`로 `방명록`을 `부의록`으로 바꿔 사용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부고를 `궂김알림`이라는 순우리말로 순화해 사용하자고 한다. `궂기다`는 윗사람이 죽었음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분명 장례와 관련된 말들에 엄청난 한자어 사용이 되고 있다. 그러나 순우리말이라고 해서 한자어를 모두 바꾸려 하는 시도는 늘 조심스러워야 한다. `부고`로 너무도 잘 쓰이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낯선 어휘를 활용한 말로 써야 할지는 재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장례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천안함 사건 때 모교에 분향소가 차려진 적이 있다. 당시 학과 예비역 동생들이 나누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빈소와 분향소의 차이를 설명하던 한 친구가 정확히 그 뜻을 설명하더니 괜한 말을 보태어 흠을 냈던 기억이 난다. 분향소는 `나눌 분(分)`자를 써서 여러 곳에서 혼백을 기리는 곳이라고 당차게 이야기하던 모습.

`빈소(殯所)`는 `상여가 나갈 때까지 관을 놓아두는 방`을 말한다. 그러므로 빈소는 한 곳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은사님의 어머님 빈소는 제주 서귀포시에 마련되어 있었다. `분향소(焚香所)`는 `영정을 모시고 향을 피우면서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곳`으로, 빈소와는 달리 여러 곳에 마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천안함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처럼 국가적으로 애도를 표할 일에는 시청이나 대학, 광장 등에 `분향소`가 마련되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과 관련된 표현들을 종종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위에서 필자가 사용한 `돌아가다`,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처럼 우리는 `죽다`라는 표현을 대부분 완곡하게 표현한다. `떠나다`, `잠들다`, `소천(召天)하다`, `영면(永眠)에 들다`처럼 다양한 표현이 있다. 이 외에도 직접 말하기 꺼려지는 표현들을 다른 말로 바꿔 표현하곤 한다. 용변(用便)을 `볼일`로 쓴다거나, 부모를 가리키는 말로 `춘부장(春府丈)`, `가친(家親)`처럼 예의적인 표현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대체되는 단어들이 대부분 순우리말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하는 일부 입장이 있다. 한자어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나, 앞서 말하였듯이 잘 쓰이고 있는 말을 애써 낯선 말로 순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납골당`보다 `봉안당`을 사용하려는 변화에 우선은 만족해야 할 것이다. 평소에 잘 쓰일 수 있는 순우리말로 바꿀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무조건 한자어를 배척하기보다는 `많은 이들이 두루 편히 사용할 수 있는 말`을 위해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박원호 한남대 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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