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병배 논설위원
라병배 논설위원
지난 8일 충북 청주 토박이 노영민 전 주중대사가 2기 청와대 비서실 수장이 됐다. 두어 명 경합자가 없지 않았으나 무혈입성이라는 표현을 써도 과하지 않다. 노 실장을 포함해 충북은 대통령 비서실장 2명을 배출했다. 전임 정부 시절 이원종 전 충북지사가 5개월여 비서실장을 자낸 바 있다. 정권 교체 후 집권 3년차 초입에 노 실장이 그의 뒤를 이어 비서실장 2호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노 실장을 압축적으로 규정하면 2004년 17대 총선 최대 수혜주라는 별칭이 어울린다. 그 때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단 것을 신호탄으로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3선 의원을 지냈고 이후 주중대사를 거쳐 15년만에 청와대 비서실 1인자 지위에 올랐다. 노무현 정부 출범 2년 차에 치러진 17대 총선은 당시 열린우리당이 탄핵 역풍을 타고 전국을 휩쓸었다. 충청권도 마찬가지다. 대전 6석, 충북 8석을 싹쓸이 했으며 충남에서만 반타작(5석)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 기반이 닦인 청주권 정치지형은 현재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노 실장이 비서실장으로 전격 발탁된 것을 비롯해 같은 당 총선 동기인 이시종 충북지사는 재선 의원을 거쳐 3연임 선출직 도지사로 일하고 있다. 참고로 이 지사는 노 실장의 고교 직속 10년 선배다. 노 실장과 같이 정계한 입문한 변재일(청주 청원구)·오제세 의원(청주 서원구)은 4선 중진의원 반열에 올라 있다. 청주를 주름 잡는 정치인 3 인방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 3명 중 노 실장은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그는 17대 총선을 통해 국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2000년 16대 총선에서 동향 후배 변호사에게 패한 전력이 있다. 총선 도합 전적 3승 1패에 해당한다. 이후 탄탄대로를 걷다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소위 시집 강매 사건 여파로 당원 자격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아 4선 고지 공략을 접어야 했다.

결과론이지만 노 실장이 20대 총선에 출마해 4선 의원이 됐으면 그의 정치 행로는 달라졌을 수 있다. 그 길이 가지 말아야 할 길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 길을 따라갔어도 장관 자리 정도는 보장받았을 개연성이 짙다. 그에게 20대 총선 출마 불발은 새로운 경로로 진입하는 단초가 된다. 주중특명전권대사로 나가는 기회를 얻어 예열을 하는가 싶더니 일약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컴백함으로써 정치적 존재감을 증명했다.

노 실장의 20대 총선 패싱에 따른 반사이익은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누리는 형국이다. 노 실장을 대신해 그의 지역구(청주 흥덕구)를 수성해 재선 의원이 된 데다가 의원 입각해 장관 감투마저 썼다. 우연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으나 노 실장·도 장관 조합은 이채로운 케이스다. 노 실장의 청와대행은 21대 총선 시계에 기속되지 않는다고 볼 때 도 장관은 더 이상 노 실장 지역구의 부재지주로 인식될 이유가 없어서다.

노 실장의 정치적 진로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맑음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실세형 비서실장 역할에 매진할 것으로 예상되고 청와대에 머무는 시간도 꽤 길어질 수 있다. 특별히 탈이 나지 않을 경우 길게 잡으면 정권 임기와 동행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리고 언젠가 노 실장이 청와대를 나오면 2022년 지방선거로 갈아탈 기회를 노릴 수 있다.

노 실장은 꽤 운이 트인 정치인이다. 3선 의원을 거쳤고 4강 대사직도 경험했다. 그리고 권부 심층부에 진입해 있다. 그것도 현대판 도승지 직함까지 얻었다. 노 실장 개인의 자긍임은 물론이고, 충청권에 대한 정치적 인식도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교차한다. 청주를 텃밭 삼아 고속 성장을 구가한 노 실장이다. 그로 말미암아 지역에선 목하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되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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