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역대 특종은

함재준기자 정전협정조인현장 잠입취재=1953년 7월 28일자  [사진=대전일보DB]
함재준기자 정전협정조인현장 잠입취재=1953년 7월 28일자 [사진=대전일보DB]
창간 70주년을 맞이한 대전일보에는 지난 세월의 온갖 표정이 담겨 있다. 기나긴 시간 속, 대전일보를 더욱 빛나게 만든 특종 보도는 현재의 대전일보를 만든 밑거름이었다. 언론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숙명, `특종`. 특종은 사회의 이면을 고발하고 여론을 환기시켜 보다 나은 방향으로 사회를 이끈다. 세간을 흔든 특종은 지역사회 발전과 우리나라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사회, 정치, 교육, 문화 등 전분야에 걸친 대전일보의 특종보도는 대전·충청지역의 변화와 발전을 견인해왔다. 100여 건에 달하는 특종 중 대전일보를 대표하는 특종 10건을 소개한다.



◇함재준기자 정전협정조인현장 잠입취재=대전일보 종군기자 함재준은 한국전쟁을 통틀어 `대한민국 대표 종군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51년 7월부터 내내 정전협정 협상을 취재한 함 기자는 1953년 7월 정전 협상 조인 현장을 취재하는 `대특종`을 한다. 취재의 제재에 함 기자는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뿌리치고 조인식장에 진입, 역사적인 현장을 취재했다.





◇양창선 구봉광산 매몰, 15일 만에 구조=대전일보 1967년 8월 24일자 3면에 충남도내 광산 2곳에서 일어난 광산 사고를 다룬 4단 기사가 실렸다. 유명한 구봉광산 양창선씨 구출 사건의 특종이 시작되는 기사였다. 사건을 보도한 대전일보 안종일 기자는 매몰 사고가 발생하자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생사를 넘나드는 구조상황과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매일 타전해 전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 냈다.



◇대전 괴정동 청동기유물 발견=1967년 8월 26일자 대전일보에는 `대전시내서 동경 등 12점 발견`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해방 후 최대 청동기 유물 발굴로 손꼽히는 대전 괴정동 청동기 유적과 유물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대전일보는 문화재에 관심이 떨어졌던 1960년대에 발굴과정, 유물 수습과정, 뒷 얘기까지 상세히 보도해 문화재의 가치를 다시금 조명했다.





◇공주 백제무령왕릉 발굴=충남 공주읍 금성동 사적 13호 송산리 고분의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한국 고고학계 일대 사건이었다. 대전일보는 1971년 7월 무령왕릉 발굴기사를 한달 내내 심층보도, 현장보존, 박물관 건립, 공주 관광개발 등을 지속적으로 기사화해 공주박물관 건립을 이끌었다. 후속보도에서는 졸속 발굴과 현장조치 미흡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오대양 사건, 32명 집단 자살=1980년대 후반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 중 하나가 `오대양 사건`이다. 대전일보는 1987년 8월 24일자 사회면 톱으로 오대양 간부와 직원의 무더기 경찰 구속 보도 후 29일, 30일자 호외발행을 통해 오대양 32명의 죽음 소식을 알리기까지 경찰수사 보다 한 발 앞서 취재로 진실을 밝혀냈다. 경찰수사가 대전일보 보도를 뒤따르는 모양새가 연출된 셈이다.





◇김밥 할머니, 충남대에 50억 원 기증=1990년 11월 14일 대전일보 사회면에 `60대 익명의 독지가 사재 털어 충남대에 30억 희사`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른바 `김밥 할머니` 특종이었다. 11월 29일 대전일보 사회면에는 거액을 희사한 독지가가 76세의 이복순 할머니로 평생 김밥장사로 번 돈이라는 기사가 실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희사 금액도 50억 원 이상인 것이 새롭게 알려졌다.





◇전주교도소 탈주범 자살 사진보도=1990년 12월 28일 대전일보를 받아 본 독자들은 깜짝 놀랐다. 1면을 비롯해 14·15면에 교도소 탈주범 자살 장면이 담긴 사진 등 충격적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당시 전주교도소 탈주범 3명은 대전 인근에 잠입,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해외유명 신문과 방송통신들도 인용 보도한 이 사진 특종은 1990년 한국보도사진부문 금상과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부여 백제금동대향로 발굴=1993년 12월 20일 대전일보는 부여 능산리에서 엄청난 문화재가 발굴됐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비밀리에 취재에 들어갔다. 대전일보는 치밀하고 끈질긴 취재 끝에 정부 발표에 앞서 22일자에 사진과 함께 국보급 금동향로가 나왔다는 기사를 특종 보도했다. 대전일보는 이 발굴을 계기로 백제유적 발굴체계를 재정립 해야 한다며 3차례 시리즈 기사를 실었다.





◇한국타이어 근로자 연쇄사망=대전일보는 2007년 8월 17일자에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금산공장, 연구소에서 1년 사이에 무려 8명의 직원이 돌연사나 안전사고, 자살 등으로 목숨을 잃어 파문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전일보 보도로 한국산업안전공단은 역학조사에 착수했고 국회는 조사활동을 벌였다. 이 사건 보도로 대전일보 김형석, 노형일 기자는 2007년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충무공 이순신 고택부지 경매 충격=대전일보는 2009년 3월 25일 1면 머리기사로 사적 154호로 지정된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 장군 고택 터와 토지 10만㎡가 법원 경매로 나왔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특종 보도했다. 경매 5일 전 보도로 이순신 장군 생가 터가 타인의 매각 위기에서 벗어났으며, 암시장에 나왔던 이순신 종가 유물 100여 점도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현충사에 전시, 보관되는 계기가 됐다.김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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