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정책 쏟아내던 와중에
우주청·육사, 표 논리로 소진
번지수 틀리면 재분류가 타당

라병배 논설위원
라병배 논설위원

대선은 정책·공약의 경연장으로 규정된다. 이번 대선 경쟁 축의 본류도 다르지 않다. 이미 유력 후보들은 이곳 저곳 돌며 지역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말을 내뱉었다. 비유하면 대선 정책·공약의 창고 대방출 시즌이다. 지방 입장에서도 대선은 기회의 창이다. 대선 후보들(캠프)은 지역 표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 이의 활용 여하에 따라 자기 지역 당면 현안을 공약으로 관철시킬 수 있어서다. 대전 ·충청권도 대선 공약을 반영하는 데 그런대로 성과를 거두는 듯했다.

지난해까진 그런대로 무난했다. 그러다 올해 들어 꼬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시발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가칭 항공우주청(우주청) 경남 설치 공약이었다. 우주청 설립은 대전의 야심찬 전략 기획 상품이었다. 그리고 그 우주청을 대전에 둬야 한다는 게 무언의 지역사회 밑바닥 집단지성이었다 할 수 있다. 여러 배경 설명을 떠나 우주청 전격 공약은 경남권 지지율 확장성을 감안한 판단작용으로 추정된다. 그 즈음 윤후보 대선 지지율은 라이벌인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밀리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았을 터다. 이후 경남 환심을 샀을지 모르나 대전권 분위기는 거북해진 상태다. 대덕연구단지 사정에 정통한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층이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성명서도 발표하고 포럼도 열어 대전 배제의 부당함을 설파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자연히 시선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로 향했다. 설 연휴가 끝난 후 경남을 찾은 이 후보 행보에 관심이 커질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 후보는 우주청 입지와 관련해 명확한 언급을 자제했다. 예상 가능한 태도였다. 경남에 가서 타 후보가 선제 공약한 것을 탄핵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항공우주산업 중심 클러스터 추진 의지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맞는 평가다. 우주청 입지 문제에 국한해서 그렇지, 두 사람은 경남·북권을 겨냥한 물량 공세를 서슴지 않았다. 해당 지역 표심 구애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정을 방증한다. 이들에게 경남을 포함한 부울경과 경북권은 수도권에 버금가는 전략적 승부처로 볼 수 있다. 이 지역에서 우위를 점하거나 혹은 대등하게 경합하지 못하면 한쪽은 적잖이 타격을 입는다는 인식이 깔려있다는 뜻이다. 당장의 판세를 떠나 선거일 전까지 여야 공성전이 격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주청 입지 문제가 특정 지역을 위한 공약으로 포섭당하다시피 한 정황을 지켜보는 대전·충청권으로선 유감이 크다. 대전권은 우주청 설치를 전제할 때 주요 관련 지표, 기준 항목, 정책 취지 구현 등 종합 경쟁력에서 경남에 밀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합리적인 공론 과정을 건너뜀으로써 대전권 핵심이익이 걸린 사안에 대해 방어논리를 펼 수 있는 발언권를 보장받지 못했다. 이런 양태도 절차적 정당성을 허무는 일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여야 모두 지상과제인 대선 승리를 지역공약 경쟁을 벌이는 것 자체에 대해선 토를 달지 못한다. 대선전을 치르면서 여야 후보 진영에서 정책·공약 폭탄을 지역별로 쏟아내는 것은 그래서 어느 선까지라면 이해될 수 있는 노릇이다. 다만 특정 이슈가 궤도를 이탈하게 되면 나중에 갈등의 불씨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주청 설치 공약이 그런 예라 한다면 마찬가지로 이달 초 이 후보가 불쑥 빼든 육사(육군사관학교) 안동 이전 카드도 후과를 부를 소지가 적지않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주청 설치와 육사이전 건은 대선 공약 포탄을 발사하는 것에 비유하면 표적 설정의 오류로 간주된다. 둘 다 공약 가성비로 치면 대전·충남권 적지론이 우세한 데 이를테면 무차별 TOT(동시탄착사격)로 인해 사달이 난 셈이다. 요컨대 번지수가 안 맞는 `배송사고` 공약은 재분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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