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익수 사도 요한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방익수 사도 요한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얼마 전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깻잎 논쟁'이 꽤나 시끌했다. '부먹 찍먹' 논쟁만큼 참 따끈한 이슈였던 것 같다. 애인과 그의 동성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할 때, 붙어 있는 깻잎을 떼지 못하는 친구를 도와줘도 되는지가 쟁점이었고 특히 성별에 따라 그 주장이 상반됐다. 나름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으나, 결론은 '애인이 기분 나쁘니까 하면 안된다'는 것 같았다. 독신인 사제인지라 그런 경험이 있을 수 없어 그저 재미있게 보기도 하고, 참 별걸 가지고 유난 떤다고도 느껴졌지만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는 사람들에겐 제법 진지한 물음일지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혹여나 그 싸움을 벌이는 연인이 찾아와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떠올려 봤다. 불가(佛家)의 선문답처럼 이러한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아예 그런 자리를 만들지 말라', '그래도 만나야 한다면, 깻잎 같은게 나오지 않는 곳으로 가라'. 애초에 연인의 심기를 거스르게 할만한 그 어떤 요소라도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 아닐지. 자잘한 오해나 충돌이 잦게 되면, 붙어 있는 깻잎 한 장이 떨어지는게 아니라, 그 관계가 깨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늘 다정하고 인자하게 그려지는데, 성경에선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너무 먼 말씀들도 종종 보게 된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 5,29-30)" 온전한 몸으로 지옥에 가는 것보단 지체 일부가 소실되더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낫단 것으로, 논리적으로 수긍할 순 있으나, 감성적으론 도무지 수용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물론 이 표현은 자해를 권고하거나 폭력적인 방법을 미화시키는 메시지가 아니다. 소중한 우리 몸을 스스로 억압하거나 해하는 일은 큰 죄이고 잘못이며,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무시무시한 경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는 죄의 기회를 피하고, 악한 생각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된다.

우리는 자주, 자신의 실수나 과오에 대해 후회하며 성찰한다. 여러 분석과 반성의 과정 속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이르게 되는 결론은 '차라리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더라면'이다. '중간 중간 다른 선택과 행동을 하면 어땠을까'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환경에 놓이지 않았다면, 그러한 잘못이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아울러 위험하거나 자극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가능성이 높을 때 재빨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를 매어두고 있었음에 대한 자책도 하게 된다.

겨우 깻잎 한 장 떼어주다가 연인관계도 정리될 수 있으니 아예 피하는 것이 나은 것처럼, 우리가 어떤 큰 잘못에 빠질 위험을 아예 차단하고 봉쇄하는 것이 현명하겠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오른 눈이나, 오른손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이들은, 슬기로운 이들은 한적한 길을 걷다가 길가에서 동물의 배설물이나 쓰레기가 보인다면 바로 시선을 돌려 아름답게 피어있는 들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이와는 달리, 발길을 멈추고 그것들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얼굴을 찌푸리는 이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의 마음이 향해 있는 곳이 어디일지? 우리 마음에 나쁜 것들이 떠오른다면, 거짓이나 유혹이나 죄의 기회가 다가온다면, 우리는 바로 아름다움, 선, 진실함, 그리고 사랑의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고 있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피하지 않고 매여있는지? 오늘 하루, 우리 안에 악감정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좋은 것, 예쁜 것으로 채워나가시길 바란다. 그리고 죄의 기회, 유혹의 순간이 온다면, 그것에 빠져드는 자신을 알아챈다면, 바로 생각을 멈추고 아름다운 나, 슬기로운 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시길 바란다.

방익수 사도 요한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