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공간 소이헌 대표)
김소연 (공간 소이헌 대표)

아름다운 뿔, 사람의 얼굴과 사슴의 몸을 가진 반인반수의 몸에 여러 개의 화살이 박혀 있다. 화살이 꽂힌 곳에는 선혈이 낭자하다. 네 다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사슴은 정면을 응시한 채 서 있다. 너무도 당당한 그 모습은 차라리 처연하다 못해 충격으로 다가온다.

프리다 칼로 (1907-1954, 막달레나 카르멘 프리다 칼로)의 <작은사슴, 1946>이다. 짙은 눈썹과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두 눈, 누군가가 쏜 화살들에 맞아 온 몸은 선혈이 낭자하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그녀의 얼굴과 두 눈에서 읽힌다. 네 다리로 꼿꼿하게 버티겠다는 모습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그림 속 배경은 숲이지만 작은 몸 하나 숨길 수 없다. 잎 하나 없는 주위의 나무들, 사슴 또한 더 이상 피하지도 자신을 숨기지도 않겠다는 자세로 꼿꼿하니 버티고 있다. 뒤로 보이는 바다에 뛰어들 수도 있겠지만, 사슴의 눈은 정면을 응시한 채 날아오는 화살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은 보기에 참 불편하다. 보고 싶지 않은 그 무엇들을 자꾸 들춰내 우리가 현실에서 직시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들을 칼로는 아프게 보여준다.



지난 해 초로의 한 남자가 찾아왔다. 퇴직을 앞 둔 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강의를 들었던 인연으로 날 찾아왔다. 원인모를 통증으로 인한 불면증을 호소했다. 통증의 원인은 가족에 대한 배신감, 억울함으로 인한 분노였다. 35년을 함께 살았던 부인에게서 이혼소장을 그 것도 정년을 앞 둔 시점에서 받았다는 것이다. 35년 동안 남편 내조를 열심히 했으니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살겠다고 더 이상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말로만 듣던 황혼이혼이었다. 결혼생활이 자신에게는 폭력이었다는 이유들이 빼곡히 적혀있는 아내가 쓴 소장을 읽으면서, 믿을 수가 없는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자녀들을 통해 아내를 설득도 해보고 자신이 뭘 고쳐야 되는지 물어도 보고 모든 것을 하겠다고 빌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혼을 생각하는 아내의 마음은 확고했다. 자신의 삶을 살겠다며 오직 이혼과 재산분할만을 요구하는 아내의 마음은 자신이 어찌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았을 때 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자신에 대한 무능과 분노를 어찌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살갗만 스쳐도 수많은 송곳들이 날아와 자신의 몸에 박히는 듯한 통증들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이혼도 괜찮고 재산을 다 주어도 좋으니, 통증만 낫게 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 분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데이트를 하자고 했다. 함께 산책을 하고, 미술관을 찾았다. 처음 몇 주 동안은 이게 무슨 짓이지? 치료는 하지 않고 놀러만 다니나? 하는 의심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분은 끝까지 나를 믿어주었다. 나 역시 그 분을 믿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 프리다 칼로의 <작은 사슴>을 보고 그 분이 울기 시작했다. 초로의 남자가, 꺼이꺼이 흐느껴 울기를 30분쯤 지났나, 나를 보더니, 자신의 모습이 저기에 있다며 작은 사슴을 가리켰다. 가만히 가서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등을 토닥여 주며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제 괜찮다. 당신 여기까지 열심히 살아왔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이혼도, 경제적 능력이 없어지는 퇴직도, 당신 잘못이 아니다.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 당신, 이제 당신을 안아주어도, 당신을 인정해 줘도 괜찮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다.>



칼로의 그림 속 사슴의 몸에 박힌 화살은 아무리 몸을 흔들어도, 발을 굴러도 자신의 몸에 박힌 화살을 사슴은 스스로 뽑을 수 없다. 피를 멎게 할 수도 없다. 스스로 멎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것이 사슴의 숙명이다. 어쩌면 초로의 그 분의 삶도 사슴의 그 숙명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느닷없이 오는 복병과도 같은 인생의 장애물들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하지만 이 시련을 잘 견딘다면 견딘 만큼의 힘을 얻기도 한다. 극복하기는 힘들다.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아물었다고 해서 없는 것이 되지는 않다. 다만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가끔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걱정이 없으면 그 때가 죽는 것이여, 걱정 근심이 나를 살게 혀, 그러니 너그들 걱정하는 것이 내가 사는 거여" 우리는 아픈 기억을 숙명처럼 가지고 살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그 것들이 살아있는 우리의 증거이니.







 

김소연 공간 소이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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