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신화가 종언을 고할 무렵 드라마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 두명의 영웅이 한국을 열광케 하고 있다.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로 이름을 날린 백남준은 그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한번 거장의 면모를 되새기게 한다. ‘예술은 위대한 사기’라고 공공연하게 외친 그였지만 특유의 소탈함과 예술적 성취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올라 모국인들에게 한국인의 자긍심을 안겨준다.

미식축구 영웅 하인즈 워드의 출현은 보다 극적이다. 미국에서만 1억4000만명의 시청자가 지켜본 제40회 슈퍼볼에서 MVP를 거머쥔 이 의젓한 젊은이는 혼혈을 딛고 일어서 인간 승리를 연출함으로써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줬다. 특히 그는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미덕인 노력과 헌신, 배려의 정신을 일깨웠다. ‘풋볼 영웅’과 그의 어머니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하모니는 국민들의 가슴에 잊지 못할 감동을 수놓고 있다.

母子의 스토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웅변한다. “당당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싶어 정부 지원을 받지 않았다”는 어머니 김영희씨의 발언에서는 한국인 특유의 강인함과 자립심을 발견하게 된다. “부모가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가 자식에겐 큰 교육”이라는 김씨의 말은 우리의 교육 풍토에서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헌신과 배려의 삶은 더욱 감동적이다. 지난 시즌 플레이 오프에서 탈락한 뒤의 일화가 그 하나다. 피츠버그 트리뷴 리뷰는 ‘워드가 지난해 콘퍼런스 챔피언십에서 패한 뒤 주체하지 못할 만큼의 눈물을 흘린 것은 팀 동료 제롬 베티스가 우승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였다. 마침내 워드는 베티스에게 바로 그 타이틀을 안겼다’며 워드의 동료애를 부각시켰다. 이기적인 미국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한 삶의 태도가 모교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의 나눔의 삶으로 승화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수식어로도 워드 모자를 설명하기는 부족할 것이다.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그 둘의 삶을 이끈 것은 아마도 겸손이라는 키 워드가 아닐까. “어머니야말로 지금 내가 여기 있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단언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겸손을 가르쳐준 스승이었던 모양이다. 김씨는 “그렇게 혼날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부러 엄하게 했다”며 “그래야 세상 무서운줄 알고 겸손해질 것 아니냐”는 소신을 털어놓았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인사 청문회 때 어느 장관 내정자가 보여준 ‘겸손’을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저렇게 옳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이 말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을까”라는 비아냥의 주인공이다. 그런 그였지만 청문회장의 스타일은 딴판이었다. 그는 과거와는 달리 “앞으로 노력하겠다”, “명심하겠다”라는 등의 태도를 보여 여러 해석을 낳았다. 특유의 조소와 조롱하는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마음부터 달라지기로 결심했다”고도 덧붙였다.

워드의 겸손함이 빛난 것은 그의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우승 후 피츠버그에서 카퍼레이드를 마친 뒤 특설 무대에 올라 롬바르디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우승은 팬 여러분의 것이다”라고 다시 한번 공을 시민들에게 돌려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실학자 이덕무는 사람의 성품을 판단하는 세가지 기준중 하나로 바른 충고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냐를 들었다. 특히 재주가 있는 이들에게 귀를 열어 놓을 것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분수를 알아 겸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조성기著 ‘양반 가문의 쓴소리’中)

그래서 영국의 대시인 T.S 엘리엇도 “겸손은 가장 얻기 어려운 미덕이다. 자기 자신을 높이 생각하려는 욕망만큼 여간해서 가라앉지 않는 것은 없다”라고 했던가.

겸손의 미덕이 사라진 시대에 워드와 그의 어머니는 삶의 자세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겸손이야말로 소통과 화해와 상생의 원천임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宋信鏞<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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