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신록이 깊어간다. 엊그제 아기 주먹만 하던 나뭇잎이 어느새 어른 손바닥만큼 커져있는 모습을 보면, 굳이 어린이 날, 가정의 달이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쑥쑥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맘때가 되면,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선 순박한 시골 아이들의 “와!”하는 탄성을 들을 수 있다. 평소에 과학기술을 접하기 힘들었던 오지의 아이들을 연구원으로 초청해 첨단 과학기술을 직접 체험해주는 행사를 하기 때문이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행사기간 동안 아이들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우주기원을 밝히거나 자동차를 설계하는 원리를 배우고, 슈퍼컴퓨터로 연산한 결과를 3차원 입체 영상으로 관람하고, 초고속연구망을 통해 실시간 화상회의를 하는 등 다양한 과학체험을 한다. 그리고 행사가 끝날 때쯤이 되면 제각각이던 아이들의 꿈은 대부분 ‘과학자’로 바뀌곤 한다.

과학체험 행사를 통해 아이들이 ‘과학자’의 꿈을 갖게 됐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슈퍼컴퓨터를 한 번 봤다고 당장 특별한 교육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극을 받은 아이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미래의 빌 게이츠가 될 가능성은 훨씬 많다.

되돌아보면 과학기술 역사도, 원천기술력도 일천했던 우리가 지금처럼 세계가 주목하는 과학강국이 된 것 그리고 그 과학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룬 것은 무엇보다 우수한 인력자원 덕분이었다. 70-80년대 아이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과학자’였고, 실제로 수많은 총아들이 과학자가 되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동기유발의 기회를 충분히 주는 것이 중요한 일차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꼭 과학자가 되지는 않더라도, 과학적인 교육환경이 중요한 이유는 많다. 과학기술은 매우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이다. 비약이나 부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과학적인 마인드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구조적인 사고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국가를 이끌어갈 수 있다. 또 새롭고 창조적인 일에서도 두각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국민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대규모 과학기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과학과 더불어 자란 아이들은 보다 현명한 정책결정자가 돼 줄 수 있다.

어린 시절, 줄을 타고 이동하는 전기를 이용해 먼 곳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전등을 켤 수 있다는 사실은 마법처럼 신기한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들을 발명할 수 있었는지, 에디슨이나 벨 같은 과학자들의 머릿속이 너무나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때의 강렬한 호기심이 지금껏 필자를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도록 이끌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필자의 어린시절에 비하면 요즘의 아이들은 과학기술을 접할 기회가 아주 많다. 특히 대전의 아이들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대덕R&D특구 내의 연구기관들, 국립중앙과학관, 엑스포과학공원 등에서 과학기술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매년 KISTI가 초청하는 아이들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올해 초청한 보령시 삽시도 삽시초등학교 전교생 20명의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정된 날짜에 배가 뜨지 않아 행사를 일주일 이상 미루고서야 겨우 KISTI에 올 수 있었을 만큼, 삽시도 아이들에게 과학은 멀리 있었다. 그러나 삼일간의 행사가 끝난 뒤 아이들은 과학에 대한 열정과 애정으로 가득 찼다. 꼭 KISTI에 입사해 과학자가 되겠다고 벼르는 녀석들도 있었다.

과학기술의 궁극적인 목표가 전 국민의 행복이듯, 과학기술에 대한 동기유발의 기회나 과학적인 교육환경 역시 모든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들이 과학적 환경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앞으로 필자는 물론이요 정부와 과학기술계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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